설교 말씀

2017/10/08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사도행전 16:23-34)

 

[행]16:23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행]16:24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행]16:25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행]16:26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행]16:27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행]16:28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행]16:29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행]16:30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행]16:31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행]16:32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행]16:33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행]16:34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1. 

    어느 교회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천국 가고 싶은 사람은 손들어 보세요.” 그랬더니 모두들 손을 드는데, 한 아이가 손을 들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의아해서 왜 천국 가고 싶지 않은가 물었더니 아이가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면서 이렇게 대답했답니다.

 

    “선생님, 나도 천국 가고 싶어요. 그러나 우리 아빠는 아직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요, 술만 마시고 그래서 천국에 못 갈 거예요. 엄마랑 동생, 그리고 나는 천국에 갈 수 있지만, 아빠만 지옥에 가면 아빠가 얼마나 외롭겠어요. 나는 아빠를 사랑하기에 천국 갈 수 없어요.”

 

    이 아빠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었습니다. 이 아빠가 예수 영접 했을까, 안 했을까요? 했으니까 이야기가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요즘 신자들을 보면 자기 혼자 예수 믿고 자기 혼자 천국 가려는 이들이 많습니다. 불신의 가족들에겐 때가 되면 알아서 하겠지하면서 단 한 번도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자기 혼자 열심히 교회 나오는 이들이 많습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이 뭔지, 그게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도대체 권하지를 않습니다.

 

    전에 부목으로 섬기던 교회에서는 어느 나이 많으신 권사님은 아드님이 도무지 신앙생활을 하지 않자, 곡기(穀氣)를 끊어버리셨습니다. 놀라서 달려와 식사하시라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네가 이번 주부터 교회에 나간다면 내가 음식을 들겠다만,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대로 가련다. 그래야 주님 앞에 가서 그나마 할 말이 있지 않겠니?’ 협박을 하다시피 하여 마침내 온 가족이 신앙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번 추석에 함께 모였던 여러분의 모든 혈육들에게 이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2.

    빌립보 감옥에 한 간수(看守)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두 죄수를 인계받았습니다. 무슨 죄목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두들겨 맞아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의 죄수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상부에서는 정확한 죄목도 알려주지 않고 명령만 내려 보냈습니다, 든든히 지키라고!

 

    ‘아니 이렇게 두들겨 맞은 이들이 무슨 힘이 있어 도망간다고 이걸 지키라고 하나?’ 간수는 의아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상부의 특별 명령이니. 무엇보다 든든히 지키려면 아예 도망갈 꿈도 꾸지 못할 저 깊고 깊은 지하 감옥에 집어넣는 것이 가장 좋겠다 싶어 그리했습니다.

 

    그곳엔 빛도 들어가지 못하고, 늘 어두컴컴할 뿐만 아니라 습기까지 있어 웬만한 중죄인이 아니면 안 들여보내는데, 이 두 죄수는 무슨 죄목인지는 모르겠지만 철저히 지키라고, 든든히 지키라는 상부의 명령이니 좀 미안하긴 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에 하나 그렇게 안했다가 일이 벌어지면 자기에게 모든 책임이 돌아올 것이기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얻어맞은 그들이지만, 그래도 혹시나 싶어 도망 못 가게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워 걷지도 못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엄청 얻어맞아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지, 발이 차꼬에 채워져 걷지도 못하지, 지하 깊은 감옥이지, ... 무슨 재주로 그들이 탈옥하겠습니까? 그래서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별 일이 있겠나 싶어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잠결에 무슨 소리가 들려옵니다. 노랫가락 같고 무슨 고함 같고 ... 그러더니 갑자기 지진이 일어나는데, 얼마나 큰 지진인지 옥터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큰 요동으로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 간수,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들었습니다. 이 정도의 지진이라면 감옥 문이 다 열렸을 것인데, ! 죄수들! 죄수들은 기회만 생기면 도망가려고 하는 이들인데, 이 정도의 지진이라면 죄수들은 이미 다 도망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래서 뛰쳐나가보았더니 과연 감옥 문이 이미 다 열려있었습니다. 그러면 죄수들은? 생각하나 마나 이놈들은 다 도망갔을 것입니다.

 

    갑자기 밀려오는 절망감, 아 이 책임을 어찌할 것인가요? 자신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간수가 죄수들을 지키지 못하고 다 탈옥하게 했으니 이제 날이 밝으면 자기가 대신 죽을 것이란 절망감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구차한 꼴 당하고 죽느니 차라리 깨끗하게 자결하자 하여 칼을 빼어들었습니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묵직한 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3.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뭘 말하려고 하는 걸까요? 많은 경우 우리는 바울과 실라의 기도와 찬송으로 지진이 나고 그래서 감옥 문이 활짝 열린 것을 이야기합니다. ‘어떠한 경우, 비록 감옥 깊은 곳에 처하더라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과 기도를 올려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감옥 문을 열어주신다하며 감옥 문이 열린 기적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닌 것 같습니다.

 

    옥문은 왜 열렸습니까? 문은 열렸으나 아무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열리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게 아닙니다.

 

    간수의 마음이 열려 복음을 받아들인 것, 예수를 영접하게 된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간수의 가정이 구원받은 사건이 놀라운 사건이요, 그게 중요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전도 행적이 기록된 것으로, 이들의 고생스러운 사역에 의해 한 가정이 구원받은 것이 사도행전 기록 목적에 부합합니다.

 

    이런 취지에서 다시 본문을 본다면 한 가정을 구원코자 하나님이 큰일을 이루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주의 종들에게는 고통스러운 시간들이었지만, 주님은 실로 한 가정을 구원키 위해 얼마나 크고 집요한 열심을 내셨는지 모릅니다.

 

    보십시오, 오늘 말씀에는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여럿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울과 실라가 억울한 누명 속에 체포당한 것입니다. 점치는 귀신 들렸던 여자아이를 온전히 고쳐주었는데, 그 아이의 주인들이 자기들의 금전 수입이 끊어진 것에 화가 나 바울과 실라를 모함하여 체포당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똑똑한 바울과 실라가 이에 대해 아무 말 없이 체포당합니다. 그들은 전도자로서 얼마나 말을 잘 하는 이들입니까! 그럼에도 한 마디 항변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억울한 구타, 폭행을 당합니다. 그들에게는 로마 시민권이라는 엄청난 사회적 신분증이 있음에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로마 시민권이 있는 사람은 합당한 재판을 받기 전까지 구타를 당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 규약을 지키지 않은 관리들은 파면당하거나 심지어 감옥에 갈 수도 있는데, 바울과 실라는 이 로마 시민권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때리는 매를 고스란히 맞았습니다.

 

    그것도 얼마나 맞았는가 하면 거반 죽도록 맞았습니다. 본문에 보면 바울과 실라는 밤중쯤 되어 기도와 찬미를 하였다고 합니다. 낮에는, 저녁에는 뭐 하였습니까? 너무 맞아서 기력이 다 떨어져 꼼짝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밤중이 되자, 지하의 서늘한 기운에 기운을 되찾으며 바로 기도와 찬송을 하였던 것입니다. 밤중이 될 때까지 기운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매를 맞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끝내 로마 시민권을 꺼내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지진으로 문이 열렸는데 어째서 다른 죄수들이 도망가지 않았을까요? 바울과 실라야 그날 처음 본 죄수들이고, 자기들은 일찍이 들어와서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언제 나갈꼬 하며 그 감옥에서 나갈 날만, 기회만 엿보고 있던 죄수들인데, 어째서 그들이 도망가지 않았을까요? 설령 바울과 실라가 도망가지 말라고 했을 수도 있으나 세상에 감옥에 그날 들어온 신참이 하는 말을 어느 고참들이 듣는단 말입니까? 그것도 도망갈 수 있는 기회인데 말입니다. 그럼에도 아무도 도망가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모든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의 초점은 무엇인가요? 바로 그 간수의 집안 구원입니다. 이것 때문에 주의 종들은 억울한 매를 흠뻑 맞았고, 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고, 감옥 문이 활짝 열렸으나 어떤 영적인 큰 두려움 속에 죄수들은 한 명도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구원키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뜻을 세우시면 집요하게, 놓지 않으시고, 절대 포기하지 아니 하시고 그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 집요한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 가정에도 충만하기를 소망합니다.

 

    4.

    빌립보 감옥의 이 간수, 마침내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얻어맞고 자기에게 맡겨진 이 정체불명의 죄수들, 지진이 나서 모두가 도망갔어야 하는데, 그럼에도 모든 죄수가 도망가지 못할 정도로 권위를 갖고 있는, 당신 스스로도 감옥에 그대로 있는 이 태산 같은 바울과 실라 앞에 간수는 무릎을 꿇습니다. 그리곤 묻습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자, 이젠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봅시다. 이 간수가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묻는 이 질문의 의도는 예수 믿고 싶다는 건가요? 전도 받아 신도가 되겠다는 의미인가요?

 

    이 간수의 절박한 외침,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는 세속적인 외침, 현실적 외침입니다. 자기가 문책 당할 수밖에 없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취해야 이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를 묻는 것입니다. 감옥 문이 열렸음에도 죄수들이 한 명도 탈옥하지 못할 정도로 바울과 실라가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 그들에게 뭔가 배경, 세속적 권력과 줄이 닿고 있을 것이란 추측 하에 도와달라고 매어달리는 간수의 외침입니다.

 

    지금 간수는 정말이지 진퇴양난에 빠진 것입니다. 상부의 엄한 명령도 있었고, 간수 수칙에도 있고, 이래저래 자기는 책임을 면키 어려운 상황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물에 빠진 사람 새끼줄이라도 붙잡는다는 절박감에 바울과 실라에게 무릎을 꿇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러면, 이 사람의 의도, 세속적 권력의 도움을 의지하며 도와달라는 이 사람에게 바울과 실라는 뭐라 답해야 하는가요? “걱정하지 마라. 나에게 로마 시민권이 있으니 내가 나중에 잘 이야기 해 줄께.” 뭐 이랬을 것 같은데, 바울과 실라는 대뜸 뭐라 했다구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5.

    실질적인 어려움에 봉착하여 도움이 절실합니다.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성경은 말하는가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데 이게 매칭이 잘 된 건가요? 이 문제가 예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듯한데? 예수님은 거룩하신 분, 하늘의 하나님, 영원하신 분이시고, 이 문제는 철저하게 육신적 문제, 철저히 세속적인 문제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수님과 이 문제는 어울리지 않는 매칭인데? 예수님이 과연 이 문제의 심각성을 아실까요?

 

    아십니다. ?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에! 종종 자식들을 키우다 보면 유치하고 유치한 문제, 그런 것에 나 역시 빠져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손자가 생긴 이후, 손자만 보면 내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이 녀석을 좀 웃길까 하는 것입니다. 아이보다 더 유치하게 놀아야 아이가 웃습니다. 내 취향은 결코 아니지만, 나는 그런 유치한 것에 많은 관심을 갖습니다. ? 내가 사랑하는 손자요, 자녀이기에!

 

    나의 유치한 문제들과 거룩하신 예수님과는 아무리 생각해도 매칭이 안 됩니다.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기도해 주기 전에 말해 주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어라. 성경에 네가 성공하는 길이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 기도 많이 해라. 근데 예수님이 연예인 사정을 잘 아실 것 같으니? 모르신다! 그러나 네가 기도하면 연예인 잡지를 뒤적이실 거다. ? 너를 사랑하기에! 너를 도와주기 위해!’

 

    요즘 우리가 기도하는 것들, 그것과 예수님과 매칭이 되는가요? 내가 원하는 것은 어쩌면 세속적이고, 내 욕망이고, 물질적이며, 한순간의 것인데 거룩하시고 영원하시며 영이신 예수님께서 어찌 아시겠는가요? 무슨 관련이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내가 기도할 때 예수님은 기꺼이 나를 도우십니다. 내가 부르짖을 때, 예수님은 나의 이 고민과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십니다. 기꺼이 해결해 주시려고 하십니다. ?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에!

 

    여러분, 예수 믿는 것은 이 세상의 난관, 어려움, 큰 근심, 걱정덩어리에서 구원을 얻는 일입니다. 벗어나는 일입니다. 죽어서 천국 가서야만 얻는 게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우리가 어려움을 당해 어쩔 줄을 모를 때, 우리가 제대로 예수를 믿으면, 예수님을 절대 신뢰하면, 그것도 온 가족이 다 예수 이름을 붙들고 나아간다면 그 집안에, 가정에 구원이 이를 것입니다.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떤 집은 늘 싸웁니다. ‘이 고통이, 이 어려움이 어디선 온 거냐? 엄마 때문에 그렇다. 아빠 때문에 그렇다. 자식들이 똑똑치 못해 그렇다.’하며 싸웁니다. 그리곤 더 나아가 부모를 보고 하나님이 살아 있으면 왜 우리가 맨날 이 모양으로 고통을 받느냐?’ 신앙 생활하는 자녀를 보고 예수 믿는다면 복 받는다더니 왜 우리 집안은 늘 이 모양 이 꼴이냐?’ 서로 다툽니다.

 

    온 가족이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33-34절에는 이런 장면이 나옵니다.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주고 자기와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바로 조금 전까지 이 집안은 졸지에 초상을 치를 뻔한 집안이었습니다. 직장 문제로 인해 가장(家長)인 간수가 자결을 하려고 했던 집안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향해 담대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외친 바울과 실라의 선포에 온 집안이 다 예수를 믿고 축복의 집안이 되었습니다!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어려움에서 구원을 받고파서 한 말이었는데, 그들이 예수를 전해주자, 그걸 그대로 받아들여 예수를 믿었더니 실제로 세속적인 어려움에서 구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복에 복을 누립니다.

   

    6.

    현실적으로 큰 어려움을 당한 분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이들, 어쩌면 마음속으로 죽음을 생각해 본 적도 있는 분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이 난관에서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분들, 성경이 분명히 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예수님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해결사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맡으시고 역사해 주십니다.

 

    어떻게? 그 길과 방법은 예수님만이 아십니다. 나는 그걸, 그 결과를 믿는 것뿐입니다. 오늘 이 아침, 주 예수를 믿는 여러분과 여러분의 집이 큰 구원의 복을 누리는 복된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이 여러분 집안의 모든 현실적인 문제들을 도와주실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 더욱 든든한 믿음의 반석 위에 서는 복에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정말이지 얼마나 좋은 일인지 모릅니다. 이 복음의 축복이 여러분의 가정에 충만하기를! 할렐루야!

 

<찬양 : 난 예수가 좋다오>  

 

2017. 10. 08 주일설교 : 양의섭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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