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말씀

[17/09/24]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2017.09.25 09:37

이현옥 조회 수:113

2017/09/24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이사야 50:4-10)

 

[사]50:4주 여호와께서 학자들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 줄 줄을 알게 하시고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사]50:5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 내가 거역하지도 아니하며 뒤로 물러가지도 아니하며
[사]50:6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사]50:7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사]50:8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사]50:9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사]50:10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


 

     1. 

     오래 전에 중국 정부의 중요인사 한 사람이 한국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당시 중국은 개방 정책이 한참 진행되던 시기였습니다. 경제가 개방되면서 자연히 중국 사회는 자유화의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그 자유화의 물결을 타고 종교도 자유의 바람이 불어 여러 가지 종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그 활동도 매우 활발해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공산당 지도부는 개방과 자유화의 바람을 타고 밀려오는 종교들을 어떻게 하면 말썽 없이 자기들의 체제하에 정착시킬까 고민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밀려오는 종교들 중에는 이단 사이비들도 상당수 있었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 진정한 종교이냐?’하는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연구원을 만들고 그 책임자를 한국에 보냈습니다.

 

     이 책임자가 한국에 와서 생전 처음 교회라는 곳에 가서 예배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신앙이 있어서도 아니고 연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예배라는 의식에 참석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배 가운데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멋도 모르고 예배를 드리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시원하고 정신이 맑아지고 아주 신비로운 느낌이 마음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예배를 드린 후, 자신의 인생에 전무후무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자기도 모르게 50년 간 피워오던 담배가 끊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끊으려 해도 끊지를 못했던 담배가 남이 피우는 것까지도 냄새부터 싹 싫어지는 것입니다. 바로 예배드리기 직전까지 하루에 세 갑씩 꼬박 피워대던 담배였습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중국의 많은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사 앞으로 중국의 종교 정책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이 사람에게 기독교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인 것을 깊이 경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 교회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곳이요, 그 성령께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곳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께서 여러분을 도우사 믿음의 반석 위에 든든히 설 뿐만 아니라 그토록 원하던 마음의 소원들을 이루어주시고, 맑고 밝은 마음과 영성으로 붙잡아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2.

     그런데 이런 좋은 교회에서, 소원 성취만 하는 그런 기복적인 신앙의 차원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됩니다. 이렇게 좋은 교회에서 우리의 신앙은 성장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신앙은 자라야 합니다. 딤전 4:15절에 보면, “...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고 합니다. 늘 그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했음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정말 바라기는 해가 가고 달이 갈수록 여러분의 신앙이 더욱 성장, 성숙하여 모든 이들이 보고 즐거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한번은 어느 분을 만났는데 이런 고민을 솔직히 털어놓더라구요. “목사님, , 하나님 좀 믿어 보려고 하는데 잘 안 돼요. 아무리 설교를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성경도 읽느라고 읽는데 이해할 수가 없어요.” 안타까운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 이것은 성서적으로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고 깨우쳐 주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 여호와께서 나의 귀를 여셨으므로신앙 성장의 단계에 있어서 그 첫 번째 단계는 하나님께서 귀를 열어주셔야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두고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하시며 들을 귀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바로 이 들을 귀를 하나님께서 열어주셔야 합니다. 이 귀가 열리지 않으면 아무리 배워도,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습니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던 분들이 언제부터인지 진지한 표정으로 설교를 경청하는 모습을 봅니다. ‘목사님, 이제는 설교가 귀에 들어옵니다.’하는 분들을 며칠 전에도 만났습니다. 축하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귀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열리기만 하면 다 된 것인가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열어주시면 그 사람은 다음의 단계, 배움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들려오는 그 말씀들, 감동들이 성서적인지 묵상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하는 시편 1편의 축복처럼, 은혜 받았다고 끝낼 게 아니라 받은 바 은혜를 일주일 동안 살면서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학자같이 알아들을 수 있기 위하여 배워야 한다고 까지 말합니다. 학자는 얼마나 배우는가요? 하나님께서 귀를 열어주셔서 주의 뜻을 깨닫게 하셨다면 이제 그 사람은 학자 같은 자세로 성경을 묵상하고 배워야 합니다. 귀를 열어주셔서 깨닫게 하셨음에도 성경을 공부함에 게을리 한다면 그는 사이비나, 기형적인 신앙인으로 흘러가 버리고 말 것입니다. 배워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선지자 사무엘은 어렸을 때 하나님께서 그 귀를 열어주셔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3번이나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에 대하여 배운 바가 없기에 무슨 뜻인 줄 모르고, 그의 스승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줄 알고 허둥지둥 달려갑니다. 말씀의 도리를, 성경을 배워야 합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베뢰아 교회 교인들을 묘사하는 데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날마다 성경을 상고, 공부하였습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가끔 엉뚱한 주장을 하고, 여러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이들이 있는데,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공부하지 않고, 기도에 열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경험과 상식으로 신앙의 세계에서 살려니 상처를 줄 수밖에 없습니다.

 

     가끔 성경을 공부하지 않기에 세상적 잣대와 논리로 주의 나라를 폄하(貶下)하고 고집부리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하나님께서 그 크신 은혜로 우리의 귀를 열어주셨는데, 이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했는데, 이제 하나님의 뜻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성경을 묵상하고 공부함에 학자같이 열중해야 합니다. 그러면 더욱 큰 신앙인으로 자랄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귀를 열어주시고, 그에 따라 배우기 위해 힘쓰는 그리스도인은 이제 3번째 단계로 나아가는데, 그것은 봉사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에 주 여호와께서 학자의 혀를 내게 주사 나로 곤고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알게 하시고라고 말씀되어 있듯이 남을 도와야 합니다.

 

     학자란 단어는 림무딤이란 히브리어인데 배운 자, 가르침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왜 배운 자의 혀가 필요한가요?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남을 논리적으로 공격하기 위해서인가요? 아닙니다. 그것은 곤고한 자, 참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 자를 말로서 도와줄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깨닫게 도와주고 적절하게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기 위해서!

 

     때로 세상에선 배운 자들이 가난하고, 무식한 자들을 도외시하고 자기들끼리만 좌담이니, 세미나니, 토론이니 하며 지식을 즐기지만, 그리스도인으로 배운 사람들은 그 배움으로 어려운 자를 위해 일해야 합니다. 대학교수라고, 박사라고 어린이부 교사를 못하겠습니까? 회사 사장이라고 차량 봉사를 못하겠습니까?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깨달음을 입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섬김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초신자를 가르치고, 병든 자를 위로하고, 없는 이를 돕고, ... 이는 하나님의 지식과 은혜는 한 곳에, 한 사람에게 머무는 정적(靜的)인 것이 아니라 항상 차고 넘치어, 타인에게 향하는 동적(動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배우고, 깨우친 사람은 이제 남을 도와야 합니다. 어려움에 빠진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하는 이들을 돕고 봉사해야 합니다. 신앙 세계의 깊이는 이 봉사함에 있습니다. 그럴 때 신앙은 성장하고 마침내 성숙한 단계로 나아갑니다.

 

     3.

     그런데 이렇게 신앙이 성장하여 보다 깊이 있는 은혜의 세계에서 주의 일을 하다 보면 꼭 뒤 따르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와 사례, 칭찬과 격려가 아니라 시기와 모함, 비난과 질투인 핍박입니다.

 

     6절에 이런 모습이 나옵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렇게까지 최고의 모욕을 당하고, 육체적인 핍박을 당하고 수욕과 침 뱉음을 당하는 이들이 누군가요? 신앙이 점점 성장 성숙하여 하나님의 일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는 성도들입니다. 빈둥빈둥 노는 성도가 아닙니다. 초신자, 나약한 신자가 아닙니다. 사단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그런 나약한 신자들이 아닙니다. 사단이 바싹 긴장하는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성숙한 성도에게는 그만함 시험이 옵니다.

 

     그렇다면 이런 핍박과 어려움, 모욕을 감당할 수 있는 길은 뭔가요? 우리가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순풍에 돛단 듯이 모든 게 흘러가는 게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오해와 비난과 마음고생이, 때로는 심한 모욕이 주어질 때, ‘그 만큼 흉 봤으면, 그만큼 비난했으면, 그만큼 핍박을 하였으면 이제 두 손 들고 물러서겠지할 때에 뒤로 물러서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길은 무엇인가요?

 

     7,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하나님께서 방관만 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이 고통당하는 것을, 핍박받는 것을 구경만 하고 계시지 않습니다. 도우십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41:10) 괜히 흔들리고 낙심하지 말고 이럴 때 더욱 더 하나님이 자신을 붙들고 계심을 믿으십시오! 도우심을 신뢰하십시오!

 

     아울러 이 자세를 갖으십시오. 곧 세상에 대하여, 나를 비난하고 모욕하는 세상에 대하여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십시오. 주님 뜻대로 사는데도, 주의 일에 열심 봉사하는데도 뜻대로 잘 풀리지 않을 경우, 그래서 주위에서 쑤군거림이 있고, 비난과 조롱이 있을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라구요? 하던 일을 때려 치라구요?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은즉 내가 수치를 당치 아니할 줄 아노라! ? 8-9, 나를 옳다, 의롭다 하신 이가 나와 가까이 계시고, 그 분께서 나를 도우시는 데 누가 나를 대적할 것이랴 는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기 때문! 그리고 참된 평가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신념 때문!

 

     그러기에 신앙이 성장, 성숙하여 주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세상에 대하여, 주위의 시선과 눈총에 대하여 때로는 얼굴을 부싯돌 같이, 아이들 표현대로 한다면 철판을 깔아야 합니다. 너무 남의 이야기에 민감하지 마십시오. 좀 태연하십시오. 얼굴을 두껍게 하십시오. 중심이 하나님께 분명히 잡혀 있다면 남의 이야기, 시선, 비편, 수군거림에 좀 태연하십시오.

 

     왜냐하면 그게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10, ‘너희 중에 정말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종의 가르침을 청종하고, 순종하는 자가 누구냐? 있다면 그 사람들은 마땅히 흑암 중에서라도, 빛이 도무지 없는 때에라도, 그 환경이 분명 소망이 없는 가운데서도, 마음에 큰 낙담이 들 때에도,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믿으며, 자신을 속이거나 버리지 않는 하나님을 굳게 의존하라!’

 

     계산할 것 다하고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저 신실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을 그대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성서에 기록된, 계시된 하나님을 그대로 믿는 게 참 믿음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가요?

 

     4.

     하나님께서 나의 귀를 여셨기에! 하나님께서 귀를 열어주셔야 모든 신앙의 역사와 권세는 출발합니다. 귀를 기울이십시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십시오. 주께서 내 영혼에게 하실 말씀이 있고, 나는 그 은혜와 감격으로 주님께 충성하고 이웃을 돕고 섬기는 성숙한 성도가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비록 어둡고 답답하다 할지라도 세밀한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러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그리스 신화에 보면 율리시즈는,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들을 유혹하여 파멸시키는 마녀들의 섬인 사이렌 섬을 지나갈 때에 해안에서 들려오는 마녀들의 노래 소릴 듣지 않으려고 선원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고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황금의 양털을 찾아 나섰던 오르푸스도 이 섬을 지나갔는데, 그는 마녀들이 부르는 노래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여 자기 선원들을 매혹시켜 그들이 마녀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더 좋은 음악인 자신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 무사히 그 섬을 통과했다고 합니다.

 

     이 세상은 우리를 나약하게 하고, 미치게 하는 소리를 우리 귀에 계속 보냅니다. 듣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그게 쉽지 않습니다. 나를 낙심시키는 말은 원하지 않아도 언제나 꼭 일부러 친절하게 전해주는 이가 있습니다. 그저 못 들은 체 해 주면 좋으련만, 어떤 이는 그것도 은사인지 안 좋은 이야기, 시험 드는 이야기는 듣자마자 꼭 전해 줍니다. 그것도 실감나게 전해 줍니다.

 

     여러분, 여기에 귀 기울이면, 이런 말에 귀 기울이면, 그 사람 신앙은 성장하지 못합니다. 그 영이 죽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귀를 열어주신 것은 그런 것에 민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거칠고 험한 유혹 많은 세상의 온갖 이야기 홍수 속에서도 분명하게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그래서 더욱 배우고, 더욱 열심히, 충성스럽게 봉사하고 섬기라고, 일하라고 그리 하신 것입니다.

 

     “어디서 들리는가 / 주의 고운 음성 / 가만히 눈 감고 / 귀 기울이면 / 먼동이 튼 아침 길 / 홀로 걸으면 / 내 손 잡으라 / 부르는 소리 / 작은 자 귓전에도 / 소망의 음성 / 암흑에 가린 눈에 / 광명의 빛이 / 오 주여 내 몸 적시소서 / 당신의 음성으로

 

     5.

     인생의 주파수를 어디에 맞추고 사십니까? 하나님께서 하늘의 주파수를 들을 수 있도록 우리의 영적 귀를 여셨습니다. 이는 수많은 세상의 소리들 속에서도 조용하지만 아주 분명하게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라고 우리의 귀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세미한 주의 음성을 들으라고 우리 귀를 열어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이야기에 좌우되지 말고 오직 주님의 약속과 사랑에 더 귀 기울여 하늘의 평화와 안식 속에 사명을 얻어 주님의 참 제자로 살아갑시다. 비록 이 땅에서의 삶이지만 날마다 기도와 경건의 시간을 통해 하나님께서 매일 매일 하늘의 격려와 은총의 소식으로 여러분을 더욱 강건케 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이로부터 소식을 듣지 못하면 얼마나 답답하고 불안한가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소식, 함께 한다는 소식, 축복한다는 소식, 하나님의 여러분을 향한 러브스토리에 귀를 기울이며 세상에 대해서 더욱 당당하게 살아갑시다.

 

 

2017. 09. 24 주일설교 : 양의섭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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