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말씀

2017/09/17


“기대감, 그리고 하나님의 역사"

 

(사도행전 12:1-19)

 

[행]12:1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행]12:2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행]12:3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행]12:4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
[행]12:5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행]12:6헤롯이 잡아 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행]12:7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행]12:8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행]12:9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행]12:10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더라
[행]12:11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행]12:12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행]12:13베드로가 대문을 두드린대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영접하러 나왔다가
[행]12:14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기뻐하여 문을 미처 열지 못하고 달려 들어가 말하되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행]12:15그들이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여자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그들이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
[행]12:16베드로가 문 두드리기를 그치지 아니하니 그들이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라는지라
[행]12:17베드로가 그들에게 손짓하여 조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또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행]12:18날이 새매 군인들은 베드로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여 적지 않게 소동하니
[행]12:19

헤롯이 그를 찾아도 보지 못하매 파수꾼들을 심문하고 죽이라 명하니라 헤롯이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머무니라



    1.

    헤롯 왕, 포악한 왕입니다. 사람 죽이기를 파리 목숨 정도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자기 집안사람들을 죽이고, 자기 신하를 죽이는 것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기는 악한 왕입니다. 그저 자기 맘에 안 들면 누구든, 얼마나 많은 이든 다 죽입니다.

 

    아, 그런데 어떤 할머니가 예전에 오늘 성경 본문을 읽었더니 그러더라구요. ‘목사님, 이 헤롯은 대체 얼마나 오래 살았는교? 예수님 태어날 때에도 헤롯이 있었는데, 아직까정 살아있네?’ 그렇죠? 헤롯은 도대체 얼마나 오래 살았기에 성경 여기저기 나오는 걸까요?

 

    성경에는 5명의 헤롯 왕이 나옵니다. 대 헤롯 왕은 예수님이 태어나실 때 통치한 왕입니다. 열 명의 아내를 거느렸고, 매우 포악하여 부인도 맘에 안 든다고 2명이나 죽였고, 아들 3, 처남 1, 그리고 아내의 할아버지를 살해했습니다. 더군다나 예수님 태어났을 당시 유대인의 왕이 태어났다는 동방박사의 말에 불안하여 당시 두 살 아래의 아기들을 모조리 살해한 잔인한 왕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의 집안, 뻔하지 않겠습니까? 자녀 간에 반목과 불륜관계로 콩가루 집안이었습니다. 그래도 수완이 좋은 자녀는 로마에 잘 보여 왕이 되고, 그렇지 못한 자녀는 도태 당하는 집안의 내력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헤롯은 그 이름이 헤롯 아그립바 1세로, 헤롯 대왕의 아들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이며, 헤로디아의 오라비입니다. 그러니까 대 헤롯 왕의 손자입니다.

 

    2.

    이 헤롯 왕,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였습니다. 그의 작은 아버지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의 목을 베었는데, 그 조카인 헤롯 아그립바 1세는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의 목을 베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첫 순교자가 나온 것입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라면 얼마나 예수님이 아끼고 사랑한 제자인지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어디 가실 때는 늘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고 할 정도로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던 이가 죽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너무 좋아합니다. 잔인한 사람들입니다. 억울한 죽음에 대해 안타까워하지 않고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닮지 않은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라이벌이라고 여기던 눈에 가시 같던 예수의 제자, 그것도 예수 사랑 많이 받던 야고보가 죽었으니 자기들은 손도 대지 않고 코 푼 격이 된 것입니다. 너무 좋아합니다.

 

    그러자 이 모습을 보고 그 잔인한 왕 헤롯이 베드로까지 잡으려고 합니다.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 새 때는 무교절 기간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인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들 앞에 끌어내고자 하더라.”

 

    헤롯은 유대인의 왕이지만 유대인이 아닙니다. 헤롯은 유대인이 경멸하는 에돔 족속입니다. 그런데 로마에 가서 황제에게 로비를 잘 해서 유대 통치권을 얻은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행정적으로 유대 왕의 직분은 얻어 왔지만 유대인들은 그를 무시했습니다. 권력이 무서워서 앞에서는 쩔쩔 매었지만 돌아서서 유대인들은 모두 헤롯 왕가를 무시했습니다. 경멸하였습니다.

 

    그래서 헤롯 왕가의 할아버지 대 헤롯은 이래선 안 되겠다, 유대인의 환심을 좀 사야겠다 싶어 예루살렘 성전, 스룹바벨과 학개가 돌아와서 지은 예루살렘 성전, 포로로 끌려갔다가 돌아와 지었기에 규모도 작고 또한 초라하게 지어진 성전, 그 성전을 확장 공사를 합니다. 초라한 스룹바벨 성전 위에 리모델한다고 어머어마한 규모로 예루살렘 성전을 짓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 중 하나가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소서 이 돌들이 어떠하며 이 건물들이 어떠하니이까!”(13:1)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그 규모와 화려함에 경탄할 정도의 성전을 짓습니다. 유대인의 환심을 얻고파서 그랬습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그의 손자 헤롯 아그립바 1세도 같은 맥락입니다. 유대인의 존경을 받지 못해 심기가 늘 불편했는데, 예수의 제자를 죽이니까 유대의 지도자들이 환호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여론 조사 결과 지지도가 쑥 올라갑니다.

 

    그러자 내친 김에 예수의 수제자 베드로까지 죽이려 합니다. 그러면 자기를 향한 유대인들의 지지도는 최고조로 올라갈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잡아들였고, 죽이려고 감옥에 넣었습니다.

 

    그러나 때가 안 좋았습니다. 유대인의 최고 명절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에 그럴 수 없다는 것쯤은 에돔족이지만 헤롯 왕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기 위해 베드로를 옥에 넣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지키는 모습이 이상합니다. 군인 넷씩인 네 패에 맡겨 지키게 합니다. 즉 두 명은 죄수 좌우에 있게 하고, 두 명은 감옥 문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죄수를 옥에 넣으면 문을 잠그면 다 되었는데, 베드로의 경우는 다릅니다. 왜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하는 걸까요?

 

    전례가 있습니다. 사도행전 5장의 기록을 보면 베드로와 사도들을 감옥에 넣었는데 그들이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철저히 지켰음에도 하룻밤 사이에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해 네 명씩 한 조를 이루어 네 조가 철저하게 베드로를 지키게 하였습니다.

 

    3.

    예루살렘교회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들의 최고 지도자 베드로가 죽을 상황입니다. 비상 중에 비상입니다. 이런 위기에 교회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요?

 

    5,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어찌 보면 참 딱한 분들입니다. 답답하기만 합니다. 아 무슨 수를 찾아봐야지 무작정 기도만 하고 있으면 되는가요? 여기저기 통하는 길을 찾아봐야지, 최고 통치자와 줄이 닿는 길을 찾아 손을 써야지 어쩌자고 기도만 하고 있는가요?

 

    아, 거 얼마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도망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십자가에서 내려서 장례를 치러야 하는데 치룰 남자가 없어서 쩔쩔 맬 때 뜻 밖에 나서서 총독 빌라도와 담판을 지어 도움을 준 거부(巨富) 아리마대 요셉이라도 찾아가든지, 아니면 유대인 사회의 절대 권력기관인 공의회 회원인 니고데모를 찾아가 어떤 정치적인 교섭을 해 보든지,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어떤 결사대를 조직하여 죽기 살기로 당장 죽게 된 지도자를 구해내야 할 것인데 이들은 어떻게 하는가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뭐라고 기도했을까요? ‘하나님, 우리 지도자 베드로 사도를 구해주십시오. 내일이면 베드로 사도가 죽습니다. 우리의 지도자 베드로 사도를 구해주십시오. 우린 힘이 없습니다. 아니 우린 방법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난국에서 벗어날 길을 모르겠습니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 우린 지렁이 같은 야곱입니다. 우린 무지렁이 인생입니다. 우리를 돌아보시고 우리의 지도자 베드로 사도를 구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잠깐 짚고 갑시다. 이들은 기도하며, ‘하나님, 베드로 사도를 구해 주십시오. 그는 감옥에 갇혔고, 내일 사형당합니다. , 하나님, 우리 베드로 사도를 구해 주십시오. 믿습니다!’라고 기도했을 것인데, 그들은 정말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구해줄 것을 믿었을까요? 그렇게 며칠 밤을 새워 가며 기도했는데, 그들은 정말 자기들의 기도 내용을 믿었을까요?

 

    우리는 성경을 이미 읽어서 잘 알지만, 막상 베드로 사도가 기적적으로 구원받아 그들이 밤새 기도하는 곳에 찾아갔을 때, 그들 중, 그토록 열심히 기도하던 성도들 중 아무도 자기들이 기도하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감옥에서 구원받은 베드로가 성도들이 모여 밤새 기도하는 곳, 곧 교회를 찾아가 문을 열어달라고 두드렸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로데라 하는 여자 아이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나갔다가 베드로 사도 목소리를 듣고 놀라서 문도 열어주지 않고 도로 뛰어 들어가 어른들에게 베드로 사도가 문 앞에 와있다고 했지만, 그들은 모두 네가 미쳤다. 감옥에 있는 이가 어떻게 대문 앞에 와 있을 수 있니?’하고 도리어 야단을 쳤습니다. 그래도 아이가 계속 말하자 그러면 네가 그의 천사를 보고 그러는 거야하고 한 수 가르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들이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했는데, 이들에게 그런 믿음이 있습니까?

 

    믿음의 기도가 중요한데, 더 중요한 것은 그 기도가 좀 부족해도, 무식해도 기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론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이러쿵저러쿵 떠드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도는 실제로 무릎 꿇고, 실제로 골방에 들어가, 실제로 주의 성전 바닥에 엎드려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러쿵저러쿵 핑계를 대고 논리를 대는 것보다 실지로 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성경 말씀을 들어 멋지게 기도에 대해 설교를 하는 이들보다 실제로 성전 바닥에 엎드려 밤새 기도하는 할머니가 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다가오십니다. 145:18,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하나님은 진실하게 간구하는 이들에게 가까이 다가오십니다.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루십니다. 아멘?

 

    그러니 우리도 더욱 기도합시다. 우리의 상황이, 우리의 형편이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형편입니다. 우리 대통령의 마음이 얼마나 불쌍한가요? 북한에 잘 해 주고 싶은데, 저 놈들은 거들떠도 보지 않고, 세계 지도자들의 멸시를 받으면서도 기개 있게 인도적 지원을 하겠다고 했음에도 그 다음날 미사일을 쏴댑니다.

 

    한반도의 운전대를 잡겠다고 대통령께서는 말씀하셨는데, 엊그제 어떤 뉴스 해설가는 그러더라구요. 한반도의 운전대는 김정은이가 잡고 있다고. 대통령 마음도 아프고, 우리들 마음도 아픕니다. 이걸 어쩐다 이걸 어쩐다 ....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습니다.

 

    4.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이거 하나는 분명해 집니다.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교회가 그 절박한 상황에서 무기력하지만 기도를 하자 그 한밤중에 누군가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5,6,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더라.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인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 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홀연히 주의 사자가 나타나매 옥중에 광채가 빛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이르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헤롯은 철저하게 베드로를 지켰습니다. 4명이 한 조가 되어 4조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고 앞에서 보았습니다. 감옥 안에서 잠을 자는 데도 두 군인이 좌우에서 같이 누워서 지키고 있습니다. 이리 봐도 군인! 저리 봐도 군인! 그것도 두 쇠사슬에 매여서 군인 틈에서 자고 있으니 조금만 움직여도 들통이 납니다. 그것도 문 밖에서도 군인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개미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게 그렇게 베드로를 지킨 것입니다. 베드로로서는 절망적입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간다 말인가요....

 

    그런 절망적 현장에 주의 천사가 등장하였습니다. 여호와의 군대가, 하나님의 복병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 여전히 교회가 기도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복병, 여호와의 군대가 동원되어 역사를 시작하니 놀랍고도 신비한 일이 벌어집니다. 얽어맸던 모든 쇠사슬들이 술술 풀리고, 옥문이 열리고, 걸어 나가도 군인들이 눈여겨보지도 못합니다.

 

    “천사가 이르되 띠를 띠고 신을 신으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이르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 대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 새 천사가 하는 것이 생시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이에 첫째와 둘째 파수를 지나 시내로 통한 쇠문에 이르니 문이 저절로 열리는지라. 나와서 한 거리를 지나매 천사가 곧 떠나니라. 이에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이르되 내가 이제야 참으로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과 유대 백성의 모든 기대에서 벗어나게 하신 줄 알겠노라 하여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거기에 모여 기도하고 있더라.”

 

    여호와의 군대가 동원되니 그 다급한 상황에서 겉옷까지 걸쳐 입고 나올 정도입니다. 절망이다, 막혔다, 묶였다 하던 모든 것이 술술 다 풀려나갑니다. 사람들이 보지도 못합니다. 이게 얼마나 극적이었던지 베드로 자신도 생시가 아니고 꿈인 줄 알았습니다. 길거리로 나와 찬바람을 얼굴에 맞고서야 생시인 줄 알고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깨닫습니다.

 

    그리곤 어디로 갔을까요?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갑니다. 곧 마가의 다락방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입니다. 왜 그 다급하고도 위험한 상황에서 교회로 갔을까요?

 

    그는 믿었습니다! 그토록 위험한 상황에선 교회에 성도들이 모여 기도하고 있을 것을. 그래서 교회로 달려갔고, 역시 기대한 대로 성도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요즘에 베드로가 교회를 찾아왔다면 불 꺼진 교회당을 발견하고 그냥 쓸쓸히 돌아갔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할 때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그 기도가 믿음에 충만한 기도였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기도할 때 하나님의 복병, 여호와의 군대는 움직이기 시작하여 우리가 볼 때 놀라운 일, 기적의 역사를 이루어냅니다. 믿습니까?

 

    5.

    베드로 사도를 죽이려고 했던 헤롯 왕은 어찌 되었을까요? 그 못된 성격 그대로 다음날 베드로가 사라진 것을 알고 애꿎은 파수꾼들을 다 죽입니다. 그리곤 얼마 후 가이사랴에서 잘난 체 하다가 죽습니다. 어떻게 죽었을까요?

 

    23,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

 

    벌레에게 먹혀 죽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못나게 여겨 죽였던 헤롯은 정작 자신은 벌레에게 먹혀 죽었습니다.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책 유대전쟁사에 보면 이 헤롯 아그립바 1세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그는 급작스러운 복통으로 닷새를 앓다가 벌레가 배에서 나와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만한 자를 하나님께서 치십니다. 그리곤 평화가 찾아듭니다. 헤롯이 벌레 먹혀 죽으니라 한 23절 이어 24,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세상의 절대 권력자로 자처하고 교만히 행하던 이는 벌레에 먹혀 사라지고, 무능하다고 여기던 하나님의 말씀은, 무기력해 보이던 교회는 흥왕합니다!

 

    여러분, 오늘의 이 말씀은 참으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싶습니다. 동화같은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주인공이 교회의 최고 지도자 베드로입니다. 그 정직하고 순진했던, 열정적이던 믿음의 지도자 베드로입니다. 그가 고백했기에 알려진 일입니다. 그가 거짓말로 꾸며 쓴 것은 아닐 것입니다. 이 놀라운 기적의 역사는 분명 현실이요 역사였고, 그것을 몸소 경험하고 구원 받은 그 베드로에게서 오늘의 교회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도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뭔가요?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이 상황, 마치 적군이 나를 포위하고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든 이 곤고한 상황, 진퇴양난의 이 절망적인 상황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뭔가요?

 

    기도합시다. 기도합시다. 기도하고 기다려봅시다. 여호와의 군대가 움직이면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지 기다려봅시다. 우리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교회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건져주시며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실 것을 믿습니다.

 

2017. 09. 17 주일설교 : 양의섭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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