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말씀

[17/09/10] 굳게 믿지 아니하면

2017.09.10 21:10

이현옥 조회 수:127

2017/09/10


“굳게 믿지 아니하면"

 

(이사야 7:1-9)

 

[사]7:1웃시야의 손자요 요담의 아들인 유다의 아하스 왕 때에 아람의 르신 왕과 르말리야의 아들 이스라엘의 베가 왕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쳤으나 능히 이기지 못하니라
[사]7:2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사]7:3그 때에 여호와께서 이사야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아들 스알야숩은 윗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 큰 길에 나가서 아하스를 만나
[사]7:4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사]7:5아람과 에브라임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악한 꾀로 너를 대적하여 이르기를
[사]7:6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 하였으나
[사]7:7주 여호와의 말씀이 그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사]7:8대저 아람의 머리는 다메섹이요 다메섹의 머리는 르신이며 육십오년 내에 에브라임이 패망하여 다시는 나라를 이루지 못할 것이며
[사]7:9

에브라임의 머리는 사마리아요 사마리아의 머리는 르말리야의 아들이니라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

    99일에 전쟁이나 폭격이 있을 거라는 소문이 들렸는데, 조용히 지나갔습니다. 설마 그렀게까지야 되겠는가 했는데, 다행입니다. 근데 정말이지 북한은 수소폭탄까지 준비했답니다. 수소폭탄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아십니까?

 

    이제 우리는 이 무서운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하는 형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북한이 하라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형편, 핵 인질이 되었습니다. 예전에 북한이 핵을 계발할 때, 북한의 핵은 결코 우리를 향한 게 아니라고 하던 지도자들은 다 어디에 갔는지 궁금합니다.

 

    이러한 것들을 그나마 막아보겠다고 사드 배치한 것을 두고 북한도 아닌 중국에서 엉뚱하게도 극렬히 반대합니다. 모욕적인 언사까지 주저하지 않습니다. 한국인은 김치만 먹고 멍청해져서 사드를 배치했답니다. 한국은 북핵 위기와 강대국 사이에 놓인 개구리밥이 될 것이랍니다. 한국인은 그 많은 교회에 가서 평안을 위한 기도나 하라고 합니다. 아주 모욕적입니다.

 

    중국이 이렇게까지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니 사드를 더 배치하고, 더 강한 방위체계를 갖춰야 할 것 같습니다. 결코 결정적일 때 중국이 우릴 도울 이들은 아닌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동안 중국은 그들 특유의 상술, 장사를 위해 우리와 친한 척 했을 뿐, 결정적일 때 중국은 우리의 우방이 아닙니다. 중국은 북한의 우방, 혈맹임이 재확인 되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얼마나 한심한가요? 불순한 세력은 둘째 치고, 성주주민들이 왜 사드 배치를 반대하나 했더니, 북한이 사드 포대를 표적으로 성주를 폭격할까봐 그렇답니다. 그러면 성주 이외의 국민들은 다 표적이 되어도 된다는 말인가요?

 

    사드의 효율성 운운 하는 이들도 있던데, 세상에 완벽한 방어체계가 어디 있는가요? 할 수 있다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 것이 방어입니다. 위로 막고 아래로 막고 중간으로도 막고 막을 수 있는 길은 다 막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주의 사드로는 서울은 막아주지 못한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서울 사람들은 이토록 천하태평인가요? 서울을 지키기 위한 방어 시스템은 뭔가요? 얼마 전엔 제주에 사는 이가 제주로 이사 오라고 하더라구요. 일단 거기는 안전하답니다.

 

    우리는 지금 북한의 핵 위협과 중국과 러시아의 음흉한 술책, 미군의 한반도에서의 철수 카드, 그리고 일본의 기회다 싶은 군국주의의 부활, 그리고 북한의 핵 미사일에 대한 염려로 당황한 미국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대화? 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화한다고 우리에게 유리한 편으로 이끌려 갈까요? 엄청난 핵을 손에 쥐고 있는 이는 북한인데, 그것도 없는 우리를 위해 대화의 축이 기울어질까요? 거짓으로 일관되어 온 북한의 태도와 그들의 집요한 목표, 한반도에서 미군 철수, 그리고 적화 통일, 이것을 북한이 과연 포기할까요? 이제 자신들이 꽃패를 쥐었다고 좋아하고 있는데 과연 그걸 순순히 포기할까요? 그만한 대가를 요구할 텐데, 우리는 과연 그것에 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말입니다.

 

    우리 지도자들이 갈팡질팡합니다. 낭만적인 세계관을 갖고 있던 이들이 냉혹한 현실, 그것도 더 냉혹한 국제 관계, 그 엄청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국민들을 하나로 단합시켜 하나의 힘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여전히 자기 지지자들의 치마폭에만 휩싸여 있는 듯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세계로부터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2.

    오늘 읽은 성경 본문에도 이런 어리석은 한 왕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아하스입니다. 아하스는 남 왕국 유다의 왕으로, 주전 742년에 왕위에 올라 주전 727년까지 총 15년간 통치한 왕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법도를 버리고 악한 길로 달려간 왕이었습니다.

 

    이 아하스 왕 때 남 왕국 유다를 둘러싸고 있는 국제 정세는 변화가 매우 심각하였습니다. 당시 전통적 강대국은 서남쪽에 있는 애굽이었고, 가까이에 있는 강한 나라는 다메섹을 수도로 한 북쪽의 아람이었으며, 그 동북쪽으로 니느웨를 수도로 앗수르가 신흥 강대국으로 강하게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바벨론은 저 멀리 동쪽에 있는 아직은 약한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 왕국 유다의 대적자는 형제 나라인 북 왕국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마치 우리네 북한과 같은 이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남 왕국 유다를 둘러싼 나라들이 북 이스라엘, 아람, 앗수르, 바벨론, 애굽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신흥 강대국으로 앗수르가 강하게 일어나자 이에 불안을 느낀 아람은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 3 나라가 동맹을 맺어 연합 전선으로 앗수르를 막아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남 왕국 유다의 통치자 아하스가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두 나라의 지도자, 아람의 왕 르신과 북 이스라엘의 왕 베가가 연합하여 주전 734년에 남 왕국 유다를 침략해 왔습니다. 아람의 왕 르신은 아람 나라의 마지막 왕으로, 주전 732년에 앗수르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니까 르신은 그야말로 지는 해인 아람의 마지막 왕이었고, 이스라엘의 왕 베가도 역시 같은 해인 주전 732년에 호세아에게 살해당하여 베가 역시 지는 해였습니다. 이 둘이 주전 734년에 침공해 왔고, 그 다음 다음 해인 주전 732년에 각각 살해당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 이 두 왕 르신과 베가가 지는 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가 유대의 왕 아하스였습니다. 이 사실을 몰라 이 두 왕 때문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아하스의 모습이 오늘 본문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3.

    2, “어떤 사람이 다윗의 집에 알려 이르되 아람이 에브라임과 동맹하였다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과 그의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더라.”

 

    ‘어떤 사람이’, 즉 정보원일 것입니다. ‘다윗 집에’, 남 왕국 아하스에게란 뜻입니다. ‘에브라임’, 북 왕국은 이스라엘의 10지파 연합체 인데, 그중에 에브라임이 주도 지파이기에 북 이스라엘을 칭할 때 종종 에브라임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동맹하였다는 단어는 주둔하였다는 뜻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아람의 군대가 북 왕국 이스라엘까지 와서 주둔하면서 북 왕국 이스라엘과 함께 남 왕국 유다를 침공할 태세라는 것입니다. 아람군은 이미 그들의 수도 다메섹과 예루살렘간 거리의 절반 이상을 진군하였고, 이제 2,3일 뒤에는 예루살렘에 당도하게 될 상황입니다.

 

    이에 유다 왕과 백성들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같이 흔들렸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풍전등화(風前燈火) 같은 위기입니다. 얼마나 불안했겠습니까?

 

    이러한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윗 못 수도 끝 세탁자의 밭큰 길에 있는 아하스를 만나라고 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안에는 우물이 없었기에 물길을 밖에서 끌어오는 수도 시설이 예루살렘에는 되어 있었고 여길 윗 못 수도라고 불렀습니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빨래를 하였기에 세탁자의 밭이란 길 이름까지 생겼습니다.

 

    그런데 통치자인 아하스가 뭐 때문에 세탁자의 밭길까지, 윗못 수도가 있는 곳까지 행차하였을까요? 빨래 할 일도 없는 사람이 뭐 때문에 이곳에서 서성거릴까요?

 

    이곳은 전쟁 시 매우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적들이 예루살렘 성을 에워싸면 성안의 백성들은 물이 없어 다 죽을 판입니다. 그러기에 이제 아람과 북 이스라엘이 쳐들어온다기에 불안한 통치자 아하스가 방비를 점검하기 위해 이곳까지 행차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불안해하는 통치자 아하스에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하십니다. 4,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르신과 아람과 르말리야의 아들이 심히 노할지라도 이들은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하니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침공해 들어오는 아람의 르신과 북 이스라엘의 르말리야 아들 베가가 심히 노할지라도 그들은 뭐다? 그들은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에 불과합니다! 불이 이미 꺼진 연기만 나는 부지깽이, 그것도 그루터기에 불과합니다. 실상 르신과 베가의 날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지는 해인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적들의 정체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적의 정체입니다! 연기 나는 두 부지깽이 그루터기!

 

    더군다나 그들은 함께 동맹을 맺고 침공해 오면서 서로 악한 꾀를 내어 우리가 올라가 유다를 쳐서 그것을 쓰러뜨리고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무너뜨리고 다브엘의 아들을 그 중에 세워 왕으로 삼자하였습니다. 자기들 말을 듣지 않는 아하스를 폐위시키고 자기들을 지지하는 이를 왕으로 세우자는 것입니다. 남의 나라 지도자를 자기들 입맛대로 세우려는 악한 꾀입니다. 이러한 이들의 꾀, 정책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7,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 일은 서지 못하며 이루어지지 못하리라!”

 

    모략은 우리가 꾸미고, 계획은 우리가 은밀하고 완벽하게 세워도 그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이들의 모략, 꾀에 대하여 평하시기를 이 계락은 성공하지 못한다. 절대 그렇게 되지 못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불안해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낙심하지 말라!’

 

    현실을 보면 두려울 때가 많습니다. 한숨이 나올 때가 엄청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너는 삼가며 조용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하시면 그렇게 하십시오. 우리의 평안은 어디서 오는가요? 우리의 평안은 현실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평안은 역사의 섭리자, 내 인생의 설계자요 인도자이신 하나님을 절대 신뢰함에서 옵니다. 그 분을 믿고, 그 분을 의지함에서 평안이 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 주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겠네 /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41:14)

 

    4.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얼마나 무력하고 한심했으면 버러지 같은 야곱이라고 하는가요? 밟으면 밟힐 수밖에 없는 그들입니다. 자기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가 치고 저 나라가 치고, 이 나라가 모욕하고, 저 나라가 침 뱉고, ... 무능력과 무기력함, 그 자체입니다.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두 나라가 동맹을 맺어 자기들을 치러 온다니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두 나라는 이미 지는 해이며, 그들의 지도자는 불 꺼진 연기 나는 부지깽이에 불과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보신 바에 의하면 그 위협적인 두 지도자는 모두 1-2년 뒤에 죽임을 당할 형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린 앞을 못 보지만 하나님은 앞을 보시지 않습니까! 그 분이 하신 말씀이 더 정확하지 않겠습니까!

 

    자, 이제 선택은 우리에게 달렸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우리의 귀에 들어온 정보인가요? 아니면 좀 현실성은 없어 보이지만 주의 성소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인가요? 내가 평생 연구하고 계산해온 결과인가, 아니면 거룩한 책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가요? 내 상식인가요, 주님의 상식인가요? 내가 평생 공부한 것인가요, 주님께서 펼쳐준 영적 교과서인가요?

 

    오늘 본문 결론을 보십시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기독교 신앙은 바로 이것입니다. 아무리 현실이 분명해도, 아무리 들려오는 소식이 그럴싸해도, 아무리 내 생각과 셈이 그렇다 하더라도 이에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 있다면 그 하나님의 말씀, 그분의 뜻을 굳게 믿어야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내 인생은 굳게 서지 못합니다. 네가 정녕 믿음 안에 굳게 서지 못하면 네 나라도, 네 삶도 굳게 서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믿습니까?

 

    5.

    하나님께 매달립시다! 중국인들이 그렇게 조롱했더라구요. 한국인은 이제 한국 땅에 많은 교회에 가서 기도나 하라고. 조롱의 말이지만, 맞는 말입니다. 중국인들은 공산주의 나라이기에 신앙의 힘을 모릅니다. 기도의 힘과 권세를 모릅니다. 자기들도 자칫하면 기도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중국이 개방된 것이 얼마 전의 일인가요? 30여 년 전 아닌가요? 그들이 그냥 열렸을까요? 그래서 지금의 경제적 부를 누린다구요? 천만의 말씀! 그 당시에 전 세계의 교회가 중국의 개방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중국에 수억의 생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죽어간다고 중국의 문을 열어달라고 모든 교회가, 성도들이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이 열린 것입니다. 기도의 힘으로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는 그 공산당이 기도의 힘으로 다시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불쌍한 영혼들입니다.

 

    우리는 더욱 기도합시다. 우리는 더욱 우리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이 나라를 위한 방비, 군사력과 국력의 강화는 최대한 힘을 쓰며, 우리나라의 앞날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더욱 귀 기울이며 그 말씀에 굳게 섭시다.

 

    기도해야 삽니다. 나라가 우환이 들었는데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예전에 어른들은 밤을 새우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왜 기도하지 않습니까? 자기 집안에 우환이 생기고, 병자가 생겨야 기도하겠습니까? 더욱 기도에 힘씁시다.

 

    나는 우리 민족이 살아야 하는 이유가 분명 있다고 믿습니다! 마지막 때에 세계로 선포되어야 할 복음이 우리에게 들려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세계를 살려야 하는 복음이 우리 민족에게 주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를 위협하는 이들은 모두 연기나는 부지깽이에 불과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그리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굳게 믿읍시다.

 

    6.

    로마로 가는 배가 있었습니다. 폭풍을 만나 거친 풍랑 속에 파선의 위기를 맞아 모든 것을 다 버리고도 보름 가량을 해도 보지 못하고 어두움 속에 부평초처럼 떠다닙니다. 모두들 죽었구나 하고 절망하며 우왕좌왕하는 데, 그 배에 죄수의 몸으로 끌려가던 하나님의 종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일어나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27:25)

 

    나도 이 하나님을 굳게 믿습니다. 풍랑이 이는 현실을 믿는 게 아니라 그 뒤에 역사하시는 거대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믿습니다! 그 역사 현실 속에 선포되는 주의 말씀들을 믿습니다! “그는 흉한 소문을 두려워하지 아니함이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그의 마음을 굳게 정하였도다.”(112:7)

 

    아무리 국제 정세의 격랑(激浪)이 일어나도 우린 더욱 더 기도하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싸우시는 역사를 바라봅시다. 준비할 것은 철저히 준비하되 그러나 우리의 마음만은 끝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만을 의지합시다.

 

    “만일 너희가 굳게 믿지 아니하면 너희는 굳게 서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2017. 09. 10 주일설교 : 양의섭위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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